영원을 찾아 어둠 속을 헤매이다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있다고 믿었는데 한 평생 그렇게 그림자를 쫓다가 죽음 앞에 주저 앉아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나는 나라는 존재가 참을 수 없이 가벼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소설책의 제목처럼요. 사람은 그런 존재 아닙니까? 현재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할 거라고 자기 자신을 속이는 그런 존재 말이에요. 그게 인간 관계이든 사회적 위치이든 물질적 풍요이든 자기의 건강이든 우리들은 시간과 공간에 사로잡혀 지금 이 시간이 지금 내가 서있는 이 공간이 영원할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거 같아요.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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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자신한테 실망을 해버렸다. 내 안에 있는 죄악과 오염 때문이다. 나 자신에게 아무런 희망이나 기대를 걸지 않는 만큼 다른 사람에게는 더더욱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것이고 그로 인한 실망도 하지 읺을 것이다.

또 한가지 깨달은 것은 자책하고 슬퍼해봤자 남는 것이 없다. 세상에서 나그네인 이상 삶을 살고 있는 이상 나는 내 앞에 무슨 일이 닥쳐도 살아나가야 한다. 슬퍼하고 절망할 때가 지나면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잠을 자야 한다. 그리고 계속 천국을 향하여 전진해 나가야 하는거다. 

트루 러브? 진짜 우정? 난 정말로 그것들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완벽한 우정, 완벽한 사랑. 하지만 이 땅이 아닌 천국에서ㅋ 이 타락한 세상 꼬일대로 꼬인 세상에서 지생각만 하는 개개인들 사이에서 완벽한 우정 완벽한 사랑은 싹틀 수가 없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와 그 가운데 슬픔과 아픔만이 있을 뿐이다. 점점 나아지겠지. 근데 절대로 완벽할 수 없다.

그래서 친구를 믿고 배우자를 믿고 의지하면 안된다. 하나님 한 분만 믿고 의지해야 한다. 저들은 긍휼을 받고 사랑이 필요한 존재지 내가 받고자 하는 긍휼과 사랑과 인정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내가 원하는 그 모든 것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신 것이다. 정말로ㅋ

상속

“너는 앞으로 네가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해? 생각 안 해봤어. 왜? 어차피 내 생각대로는 안 될 테니까. 그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음은 알 수 없다. 불안 따위는 느끼지 않는다. 미래란 어차피 닥쳐 올 것이고 버러지처럼 살든 해장국집 걸레처럼 살든 어쨋든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은희경

정말로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 마음이 여기 저기 상처나고 갈기갈기 찢어질 각오를 하는 것이구나. 우정이든, 결혼이든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내 마음을 완전히 드러낸다는 것이구나.

그래서 상처받고 싶지 않으면 이기주의의 관 속에 내 마음을 걸어잠그고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되는구나. 아무와도 얽히지 아니하고 그 누구도 내 마음 깊은 곳에 들이지 아니하고 말이야. 그리고 그러면 내 마음이 딱딱하게 굳는 거지…

사랑하는 삶. 사랑하는 삶. 이웃을 위해 사는 삶. 나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먼저 받고 그 안에서 취하는 삶.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수치 때문이다. 내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 그래서 이런 수치를 가리기 위해서 나는 나에게만 집중한다. 외모, 학벌, 직업, 유머 모든 것으로 나를 가리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할 뿐더러 자꾸만 눈을 돌려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수치가 해결되었다. 바로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이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여 주셨기에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실 정도로 나를 사랑하셨기에,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요 구원 받는 존재이다.

그렇구나, 예수님이 없으면 나는 남을 사랑할 수 없는 존재이구나. 사람들 만날 때 나는 예수님 안에서 내가 하나님께 사랑할 받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믿어야 내가 저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수치심을 느끼지 않으며 저들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것이구나.

사람들 만날 때 내 가슴 속에 있는 그 이상한 막연한 감정 그게 수치구나. 부끄러움. 저들 앞에 서기에 내가 뭔가 부족하고 잘못되었다는 막연한 느낌. 사람들 만나기 힘든게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구나.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야.

예수님만이 해결해주신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셨다는 그 복음, 내가 주님 안에서 완벽하다는 사실. 주님의 의가 내게로 전가된다는 사실.

죽을 때에 후회하지 않을 인생, 내 인생 정말 성공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인생은 평생 남을 사랑하면서 내 마음 피 흘린 인생, 평생 이웃을 사랑한 인생.

“사랑은 전쟁터”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전제 위에 나는 저들을 사랑한다.

Common grace.

If the whole word is under the curse of sin, how can there be so much

The doctrine of common grace first developed by Calvin: It curbs the destructive power of sin, maintains in a measure the moral order of the universe, thus making an orderly life possible,

It should be remembered that there is only one grace. There are not two different kinds of grace as attributes of God. Common grace as well as saving grace is God’s demerited favor to sinners. That means we do not deserve it and God gives us free gifts, favor when we deserve his punishment. What is the difference then? The difference is that the saving grace removes the guilt, power and presence of sin while the common grace curbs and restrains the influence of sin. These natural blessings showered upon mankind are all because of God’s common grace! God preserves this world and allows people to develop high degree of science and art and culture. This is all because of God’s grace! God makes sure that people develop the natural life and

The definition of common grace is twofold: “Those general operations of the Holy Spirit, whereby He, without renewing the heart, exercises such a moral influence on man through His general or special revelation, that sin is restrained, order is maintained in social life, and civil righteousness is promoted or Those general blessings, such as rain and sunshine, food and drink, clothing and shelter, which God imparts to all men indiscriminately where and in what measure it seems good to Him.

Distinction between common grace and special(saving) grace

1.The special grace is only granted to the elect and not to the reprobate. The common grace is bestowed upon all men indiscriminately and the decree of election and reprobation has nothing to do with its measure because we often observe that the wicked possess a greater measure of common grace and natural blessings of life than the pious.

2.Special grace removes the punishment of sin and changes the inner life of man and sanctifies him from the pollution of sin through the supernatural operation of the Holy Spirit. Common grace, however, doesn’t effect a salvation! It only has restraining effects on sinful human nature and it does not renew human nature.

3.Special grace is irresistible. When the Holy Spirit renews our heart, we most freely come to Christ in faith and repentance and believe the gospel. However, common grace is resistible and often resisted by unbelievers and the universal offer of salvation is rejected by men who is averse to faith and repentance and in bondage to sin. It is ineffectual unto salvation, why? because it leaves the heart unchanged.

C.Common Grace and the Atoning Work of Christ

 

나는 아주 교만하고 아주 악하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나는 어리다, 불안정하다 그리고 변덕스럽다. 내 안에 믿음은 확실하게 있지만 주님 안에서 서질 못하고 자꾸만 넘어진다. 나는 감히 잘난척해서는 안된다.

사람들 앞에서 나는 경건한 척하려고 하는데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바람이고 안개 아닌가? 내가 무엇이기에 내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잘난척을 하는가? 나 자신에 대해서 High view 를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 없이는

If Adam earned it?

Systematic Theology (Berkhof) – p.496, 265 comparison. Little bit confused.

If Adam earned it?

Christ merited all the blessings of salvation for us and these blessings are applied to us through the union. It’s only in Him that we enjoy blessings of effectual calling, regeneration, conversion, justification, sanctification, perseverance, and glorification. This union is mediated through the Holy Spirit and it is the Spirit of Christ who applies the objectively accomplished work of redemption to His body, His Church.

Pastor James talked about Christ earning everything for us. He said it’s like a winning lottery but he asked it’s no use if we do not cash it. And this is the work of the Holy Spirit who “will glorify me [Christ], for he will take what is mine and declare it to you” (John 16:14).

What if the first Adam had fulfilled the conditions of the covenant of works? Let’s just suppose that Adam had earned the eternal life as our representative. How do we subjectively experience and enjoy this blessing? Here, prof. Berkhof seems to say ” There was the tie of a common life between him and all his progeny, and this made it possible that the blessings of the covenant of works, if these had eventuated, could have been passed on to the whole organism of mankind in an organic way” (Berkhof p.496)

Why do we have to be born again? Because we cannot make ourselves believe in Christ. We are spiritually dead that we should be born of God, should be born again. Could have it been possible that if Adam passed the probation period we would enjoy covenant blessings just by natural birth? Presupposing Adam was already in a federal union with all his offspring, would have we been possible to enjoy the blessing just by natural birth? I think it’s very likely but can be perfectly sure about this? Does the Bible imply it?

If we can enjoy the blessings earned by Adam by means of natural birth,

I’m presupposing the federal relationship between Adam and his offspring. .

The sin of Adam would not have passed to his offspring if he was not in the covenant of works established by God.

The blessings of Adam would not have passed to us if he was not in the covenant of works.

I’m not sure. God doesn’t say anything. The only thing we are sure is that Adam had sinned and his sin is imputed to us because he was our representative head. We also sinned in Adam. His original sin and corruption is passed on to us because he was our head. And just like this, we are able to enjoy the blessings of Christ through the union with Christ.

 

 

 

 

 

주님, 정말 모르겠습니다. 뭐가 올바른 건지 혼란스럽습니다. 왜 개혁교회를 다니면 이렇게 마음이 차가워지는지 주님께 기도도 드리지 않고 말씀도 읽게 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개혁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 주님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분 같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런 예배 분위기 속에서 정말 하나님이 무서워집니다. 너무 분위기가 심각해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살아갈 힘을 얻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머리만 커지는 것 같습니다. 주님 저는 이제 개혁교회가 아닌 교회들을 비난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들 신학에 대한 깊이는 없을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부르는 찬양에 있어서 악기를 사용하지만 신학적으로 틀린 것은 없습니다. 물론 모든 노래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성경 구절을 그대로 따라부르는 그런 노래들을 들으면 정말 좋습니다. 하나님 왜 개혁 신앙에 빠질 수록 제 마음이 차가워집니까? 하나님을 따뜻한 아버지가 아닌 무서운 판사로 대하게 되고 계속 하나님이 제 삶 속에서 멀어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심지어 이제는 “주님 사랑해요”라는 찬송을 부르면 저런 감정에 치중하는 신학 어쩌구 저쩌구 그런 비난이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감정도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정말 주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주님 사랑해요 온 맘다해 주님 위해 살기 원합니다 라고 노래를 부르는데 그게 어떻게 잘못이란 말입니까? 개혁 신앙은 주님을 정말 높여드리지만 우리의 감정을 무시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주님이 정말 높아지고 주님이 더 드러날 때 우리는 더욱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차고 그에 따라 노래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주님 이제 저는 신학과 주님을 분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 고백과 주님을 분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 예배는 너무 너무 딱딱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아무 말도 안하고 다녔지만 그리고 많은 유익을 얻긴 했지만 뭔가 나의 내면을 구속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개혁 교회 정말 신학이 올바르지만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이 없고 나는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산다는 그런 열심이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기도하고 봉사하는 그런 열심,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그런 마음은 개혁 교회가 한국 교회에서 배울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 이제 주님께 제 마음을 마음껏 표현하겠습니다. 주님 사랑한다고 주님 정말 고맙다고 그리고 주님이 내 전부라고 마음껏 고백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