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해석할 때는 언제나 문맥을 봐야하는구나. 고린도전서 13장.

아무리 목사가 된다 하여도 성도들을 향한 사랑이 없다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라고 사도 바울은 말한다. 신학교수가 되어도 모든 개혁신학과 올바른 지식과 그 지식을 믿는 믿음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받은 영적인 은사가 아무리 대단하고 뛰어나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다 하면은 교회를 절대로 세울 수가 없구나.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지식이 많다고 할지라도 교만으로 인해 분쟁이 생기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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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2장

To each is given the manifestation of the Spirit for the common good.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나게 하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님께서 내게 주신 이 선물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셨고 성령님의 은사가 나타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교회 전체를 위한 것이고 공공의 선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이 주신 것은 그만큼 베풀게 하기 위함이다.

제임스 목사님을 생각해봐라. 하나님께서 주신 그 말씀의 은사를 우리를 위해 온전히 사용하신다. 매주 일요일 제임스 목사님의 말씀 사역을 통해 우리 교회가 조금씩 자라간다. 제임스 목사님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이 성령님의 은사를 사용하시지 않으신다.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평생 사신다. 제임스 목사님의 그런 힘든 지적이고 영적인 노력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자라날 수 있다. 예수님에 대해서 듣고 하나님의 은혜 언약 안에서 은혜를 받는다.

제임스 목사님이 하나님께 말씀의 은사를 받았다고 해서 자랑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그럴 수 없는 이유는 그 또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주권을 따라 베푸신 선물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또한 은사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말씀의 은사, 지식과 지혜의 은사, 방언과 예언, 병 고치는 은사 등등이 있는데 이 은사에 있어서 귀천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아니, 그럴 수 없다.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모두가 목사가 되어야 하나, 모두가 교사가 되어야 하나, 모두가 장로가 되어야 하나, 모두가 집사가 되어야 하나, 대답은 아니,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사가 있다. 목사님이나 선교사들의 사역처럼 겉으로 들어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얼마나 아름다운지, 하나님께서 다스리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지체들이 서로를 위해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사용하고 서로를 세우는 이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폴 형이 너무 좋은 것 같다. 내가 크면 제임스 목사님과 폴 형처럼 되고 싶다. 딱 그 두 사람이 내가 정말 되고 싶은 존경하는 인간상인 것 같다. 제임스 목사님처럼 정말 일을 잘하고 진지하면서도 폴 형처럼 편하고 마음이 착하고 따뜻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 교회도 보면 폴 형 제임스 목사님 여러 장로님들 그리고 린 집사님, 그리고 장 장로님이랑 이 집사님 다들 보면 다 다르다. 그리고 그분들의 능력도 다르다. 어디까지 성령님의 은사라고 말은 못 하겠지만 각각 다른 모습으로 교회를 섬기시고 계신다.

고전 1-4장

나는 남자이고 나중에 한 가정의 리더가 될 사람이다. 내가 만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그 가정의 리더로 부르시는 것이다. 고린도전서를 읽으면서 고린도 교회가 가졌던 문제점이 오늘날 교회도 똑같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본다. 사람의 죄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고, 그 시절의 고린도나 지금이나 우리의 원죄와 실제 죄로 문제점이 많은 것을 본다.

고린도전서 1장부터 4장까지는 고린도 교회 안에 있는 분쟁과 그 분쟁에 답하는 하나님의 지혜에 관한 것이다. 특별히 고린도 교인들은 각자 자신이 어떤 설교자에게 속했다고 자랑하고 교만해했다. 아마 다른 설교자에게 속한 이들을 인정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은 하나님의 동역자일 뿐이며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고린도 교인이 정작 자랑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 예수이시다. 그들은 아직도 육에 속하여 이 세상 사람들이 하듯 사람들을 자랑하고 사람들을 높였지만 사도 바울은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고 도리어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다고 선포한다. 결국,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하나님의 지혜고 능력이라서 우리가 믿고 의지하고 또 자랑해야 할 것이라고 선포한다. 그리고 이 지혜를 적용함으로 서로 대적하여 교만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고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고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 꼬집어 말한다. 그리고 사도들이 얼마나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는지 알려주면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도들의 약함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시는지 알려주신다. 결국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된 사도들을 보면서 사도들은 단지 그리스도의 일꾼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복음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그릇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신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권면을 하면서 분쟁에 대한 이야기를 맺는다.

그렇구나. 고린도 교인들은 이것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을 거다. ‘아, 우리가 사람들에게 집중하고, 사람의 지혜와 사람의 풍채와 능력과 집안 가문과 교육 수준에 집중한 나머지 진짜 중요한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놓치고 있었구나. 진짜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도구일 뿐이요, 씨를 심고 물을 뿌리는 자일 뿐이요, 진짜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구나. 우리가 사람들에게 온 관심을 쏟고 정작 중요한 하나님과 하나님의 메시지를 무시하였구나. 그리고 그 결과 우리들에게 분쟁이 생겼구나.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분은 사도 바울이나 아볼로 목사님이나 사도 베드로가 아니구나. 저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가능케 하신 것은 우리들을 위해 이 땅 가운데 찾아와 주시고 우리들을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시구나. 이제는 사람을 자랑하지 말자. 사람이 아니라 저 사람이 전하는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인 주님께 다시 돌아가자. 다시 주님 중심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오직 주님 한 분 안에서 자랑하자.’

목사님이 중요한 게 아니다. 목사님의 가문이나 배경이나 교육 수준이 중요한 게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 그들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 사도 요한도 그러지 않았는가. 나는 쇠하고 그리스도가 흥해야 한다고. 그리고 사도 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자기를 본받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