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너는 앞으로 네가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해? 생각 안 해봤어. 왜? 어차피 내 생각대로는 안 될 테니까. 그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음은 알 수 없다. 불안 따위는 느끼지 않는다. 미래란 어차피 닥쳐 올 것이고 버러지처럼 살든 해장국집 걸레처럼 살든 어쨋든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은희경

참된 믿음
여러분은 뭘 부러워해야 될지 알아야 됩니다. 어떤 사람을 제일 부러워해야 합니까?
아침마다 규칙적으로 기도가 가능한 사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에 무한한 신뢰를, 남들이 조롱하고, 자기 안에서 넘치는 조롱이 자기 신앙을 조롱해도 우직할 정도로 하나님에 대한 선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으면서 기도하고, 청년시절 자기 인생을 하나님과 함께 설계해 가는 사람을 제일 부러워해야 됩니다.
참된 믿음은 요령을 부리거나 쉬운 방법을 찾거나 길이 막히면 쉬운 우회로를 택하는 것이 아니다. 우직하게 바보처럼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이다. 계속 그 길로 가는 것이다. 다른 길을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이해 해 주고 우리를 칭송하며 그들이 생각하는 세상의 상식이 통하는 삶이 결코 아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참된 믿음은, 구원에 이르는 진실된 믿음이란 바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 진리가 우리에게 증거하는 그 삶의 한복판에 거하는 것이다. 믿음을 지키기 위한 숱한 고난과 불이익과 억울함과 핍박을 견디는 것이다 끝까지 신앙의 그 자리를 지켜 내는 것이 말씀 안에 거하는 주께서 바라시는 믿음이라고 말씀하셨다.
유명한 곡예사가 있었다. 그는 방금 나이야가라 폭포 위를 줄을 타고 건너간 사람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묘기에 탄성을 지르며 박수를 보냈다. 박수를 보내는 많은 사람들 중에 이 곡예사가 한 사람을 지목에서 내가 당신을 업고 안전하게 이 줄을 다시 건너 반대편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믿냐고 물었다. 그는 당연히 내가 지금 두 눈으로 당신의 곡예를 보았으니 당연히 믿는다고 대답했다. 다음 순간 이 곡예사는 손을 내 밀어서 그럼 내 등에 올라 타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기겁을 하면서 뒤로 물러 났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엇을 원하실까? 돈인가? 세상에서의 성공을 검어쥐라고 말씀하시는가? 예수께서 계속 강조하신 바가 무엇인가? 나를 믿으라는 것이다. 내가 하늘의 빵이요 영생하는 생명의 물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너희를 죄에서 영원한 저주에서 건져낼 메시야임을 믿으라는 것이었다. 그 믿음 안에 영원히 거하며 내 말을 믿고 나에게 온전히 의지하라는 것이다. 참된 믿음을 가질 것을 줄기차게 주께서는 말씀하고 또 말씀하셨다. 오늘 우리에게 믿음이라고 하는 것을 보자. 어려운 것을, 힘든 것을, 우리를 괴롭히는 환경을 도무지 감당해 내지 못한다. 피해가려 하고 도망치려 하고 돌아 서 버리면 그만이라 여긴다. 쉬운 길만을 찾으려 한다.
정말로 반성하자. 나는 끝없는 걱정을 하지 않는가. 성경에서는 하지도 않는 질문인 내 직업, 학교 여름방학 계획 미래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가? 성경을 무엇을 질문하는가?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예수님을 따르는가?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가? 매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따르는가? 매일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는가!! 정신 차리자 서준식. 마음을 지켜라. 소중하다.

What is worldliness?
http://www.peacemakers.net/unity/mljromans8v5-17chp01.htm

마틴로이드존스 목사님의 “육신” 강해

Worldliness is departing from God. It is a man-centred way of thinking; it proposes objectives which demand no radical breach with man’s fallen nature; it judges the importance of things by the present and material results; it weighs success by numbers; it covets human esteem and wants no unpopularity; it knows no truth for which it is worth suffering; it declines to be a ‘fool for Christ’s sake’.
So if worldliness isn’t watching Chariots of Fire or enjoying bodily pleasures, what is it? A closer examination of such texts as Romans 12:2 or 1 John 2:15, reveals that, while real worldliness has several facets, its essence is an acceptance of the presuppositions of the world. This is the heart of Paul’s exhortation in Romans 12. After urging his readers to be not conformed to the world, Paul adds that we are to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our] mind.” Paul, in a manner certainly inconsistent with the anti-intellectual pietism of our day, places the emphasis on our thinking. He does this because from the heart (i.e., the mind””see Clark’s Religion, Reason, and Revelation, chapter 2) flow the issues of life (Proverbs 4:23, cf. Matthew 15:17-20). Worldliness is primarily an epistemological issue.

The mind is the battleground of the conflict between the seed of the woman and the seed of the serpent. Paul insists that “though we walk in the flesh, we do not war after the flesh (for the weapons of our warfare are not carnal but mighty through God to the pulling down of strong holds), casting down imaginations [arguments, NKJV], and every high thing that exalteth itself against the knowledge of God, and bringing into captivity every thought to the obedience of Christ” (2 Corinthians 10:3-5). This is what lies behind the apostle’s warning that we be not deceived by “philosophy and vain deceit, after the tradition of men, after the rudiments [first principles or presuppositions] of the world, and not after Christ” (Colossians 2:8).
When I speak of “the world” in this paper, I mean those people who think only, or chiefly, of this world’s things, and neglect the world to come–the people who are always thinking more of earth than of heaven, more of time than of eternity, more of body than the soul, more of pleasing man than of pleasing God. It is of them and their ways, habits, customs, opinions, practices, tastes, aims, spirit, and tone, that I am speaking when I speak of “the world.” This is the world from which Paul tells us to “Come out and be separate.” 

The conquest of Canaan shows that, when the day of God’s Final Judgment arrives, the time of God’s mercy will be over. God will show no mercy at all and the full wrath of God, which sinners truly deserve, will be unleashed, for the second time. The first time was when Jesus died, when Jesus underwent the full wrath of God against the sins of God’s elect. Even though Jesus absorbed it with His infinite being, it still shook the earth with its impact! What Jesus endured on the cross was the essence and fullness of hell. Hell is not where there is no God: hell is where God is present, only in His wrath as a consuming fire! On the Day of Judgment, all hell will break loose and no mercy will be shown and no one will be spared, from the greatest of sinners to the least of them. For the wages of sin is death, eternal death! If sin is an offense against God’s infinite honor, there is no sin that is so small that it doesn’t deserve eternal damnation in hell.

Quote

니체의 말

“살아 있는 물고기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밖으로 나가 스스로 낚아 올려야 한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견을 가지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의 생가을 깊이 파고들어 언어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물고기 화석을 사는 것보다 나은 일이다. 자신의 의견을 가지는 것이 성가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돈을 지불하고 상자에 든 화석을 산다. 이 화석은 곧 타인의 낡은 의견이다. 그리고 그들은 돈을 주고 산 의견ㅇ르 자신의 신념으로 삼는다. 그런 그들의 의견은 살아있음의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언제까지나 항상 그 상태로 정체해 있다.”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문장을 쓰기 위해 문장의 기술을 아무리 배웠다고 해도 논리적인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표현이나 문장을 개선하기 위해선, 기술을 배우기 이전에 자신의 머릿속을 개선하는 일이 우선이다. 이것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까지고 눈앞의 기술에만 사로잡혀 있게 된다.”

“자신의 생각을 말할 때 우리는 가지고 있는 언어로 표현한다. 가진 언어의 양과 깊이가 빈약하면 우리 사고의 폭과 깊이도 빈약하다고 말할 수 있다. 많은 언어를 아는 것은 많은 사고를 갖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고를 가지면 보다 넓게 생각할 수 있고, 훨씬 폭넓은 가능성을 손에 넣을 수 있다.”

“대화. 생각 없이 하는 세상 살아가는 얘기나 소문의 응수가 아니라 정해진 무언가에 대하여 차분히 의견을 나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런 대화에 의해서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무엇을 간과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자각할 수 있고 문제의 요점이 어디에 있는지도 지금보다 더 명료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하나의 사고라는 것이 만들어진다. 혼자서 우물쭈물 생각만 한다면 사고는 맴돌기만 할 뿐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는다. 그때, 대화는 서로에게 사고의 산파가 되어 도움을 준다.”

“제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최소한 다음의 세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사람과 교제할 것, 책을 읽을 것, 정열을 가질 것.”

“왜 고독한 것일까?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기에 인간은 고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