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은 선지자를 일으키신다고 하신 약속 뒤에는 시내 산 언약 장면이 숨어있다.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에 너무나도 두려워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을 때에 심히 두려워했다. 얼마나 두려워했냐면,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그 시내 산이 온통 불타며 그 자욱한 연기와 불 가운데에서 우레와 천둥과 엄청난 나팔 소리까지,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들으면 죽을 거라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

그래서 신명기 18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직접 말씀하시지 않고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시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우리의 진정한 선지자는 그리스도시다. 하나님께서 택하사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전해주시는 분, 숨겨진 하나님을 우리들에게 계시하시는 분,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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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 택함 받아 기름부음을 받으신 진정한 영원한 이스라엘의 왕이시다.  우리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을 정복하시고 결박하셨기에 이렇게 풀려났다.

신 16

구약 성경에서는 여러가지 절기들이 있었다. 칠칠절, 유월절, 초막절 그리고 안식일 등등 이러한 절기가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예배 처소로 나아가야 했다.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기까지는 실로에 있던 성막이 그 장소였다.

신약 성경에서는 그 모든 절기들이 예표하던 예수님께서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이 성취되었다. 이제 우리는 매주 첫째날 곧 일요일 날을 ‘주의 날’로 정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데 우리는 지정학적 예루살렘이 아닌 영적인 예루살렘 곧 하나님의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예수님 안에서 예배를 드린다.

구약 시대때는 이 절기들이 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해주신 일들을 기억하곤 했다.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을 나오게 하신 것과 40년 광야 생활 동안 인도하시며 지켜주신 것과 하루하루 살아갈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즐거워하는 날이었다.

이제는 이 모든 것들이 가리키던 예수님이 오셨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을 예수님과 관련시켜 생각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양이 되사 하나님의 백성의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로서 피를 흘리사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먹고 살 수 있는 진정한 영적 만나이시고 반석에서 흘러나오는 물이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사 부활하심으로써 첫 열매가 되셨으니 이것은 곧 우리 또한 예수님과 연합함으로 예수님의 뒤를 따라 우리의 몸이 물리적으로 부활할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심으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의인으로 선포받으셨으며 당신께서 직접 얻으신 모든 율법의 풍성한 복을 우리들 또한 누리게 하신다. 장차 올 영원한 하늘과 땅을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는 유업으로 받을 것이며 그 진정한 약속의 땅에서 영원토록 하나님과의 올바르고 화목하고 사랑이 넘치는 평강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일정한 기간마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기념하는데 그 본질에 있어서는 같지만 그 형태가 달라졌을 뿐이다. 곧 구약 시대의 모든 절기들과 모든 희생 제사는 그 본질에 있어서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이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를 구원해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한 행위를 통해 장차 오실 메시아 그리스도 곧 그들을 죄로부터 영원토록 구원하시고 이 땅의 일시적이고 물리적인 복과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영원하고 영적인 복을 베풀어주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고대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매주 일요일 하나님을 예배하러 갈 때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주님의 죽음을 성찬을 통해 기념하는 것이다. 그 말씀 선포를 통해 우리 죄를 더욱 깨닫고 그 만큼 예수님 안에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더욱 더 깨닫고 은혜 언약 안에 있고 하나님께서 다 하셨다는 것을 기쁨으로 받는 것이다. 특별히 그 성찬을 통해 은혜 언약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모든 것들을 다 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그 역사적인 죽음과 부활을 우리는 뒤돌아보고 다시금 다시금 기억한다. 죽어서 우리의 영혼이 예수님 곁으로 가서 부활을 기다리게 되는 날까지 우리는 매주 잊지 않기 위해 이 적대적인 세상에서 예수님의 좋은 병사로써 살아가기 위한 힘을 받기 위해 성찬식에 참여한다.

신명기 2장

신명기 2장 질문들…

하나님께서는 왜 에서 자손과 롯 자손인 모압 족속과 암몬 족속에게 이러한 은혜를 베푸셨을까? 하나님께서는 에서 자손에게 세일 산을 기업으로 주셨고, 롯 자손에게는 아르를 기업으로 주셨다. 그리고 그런 일방적인 은혜에 기초하여 에서 자손이 세일에 거주하고 있던 호리 사람을 멸하고 세일에 거주할 수 있게 해주셨다. 또한 롯 자손에게 주신 땅에 거주하던 르바임 족속을 “여호와께서 암몬 족속 앞에서 그들을 멸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특별한 은혜를 베푸셨을까?

신명기 1장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그 땅을 주리라 하신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약속 및 맹세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40년간 머물게 된 이유는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곧 그들의 불신앙 때문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무엇을 믿지 않았나?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할지니라.” 라는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약속 (신 1:8)

이것이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이 내재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그 맹세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싸우시겠다는 것이다. 우리의 도움없이 우리의 행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행위로 하나님께서 스스로 하신 약속과 맹세를 지키시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했었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 곧 하나님께서 다 하실 것이라는 것을 단순히 믿는 것이었다.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신 1:30)

애굽에서 하나님께서 다 하셨다. 열가지 재앙을 내리실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해야할 것은 그저 앉아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위대한 일을 지켜보는 것 뿐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 애굽 땅에서 나오게 된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행위로 인함이었고 이스라엘 백성이 해야할 것은 그저 믿는 것 밖에 없었다.

이스라엘의 불신앙의 결과는 무엇인가? 40년 동안 광야에서 여호수아와 갈렙 빼고 하나님의 맹세를 믿지 않았던 모든 사람들이 다 멸망했다. 그리고 모세 또한 느보 산 정상에서 죽었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 (followed the LORD)”고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그가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하리라”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온전히 순종한 리더 여호수아를 따라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다.

여호수아는 예수님을 예표한다. 예수님은 더 위대한 여호수아다. 왜 그런가?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간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율법에 완벽히 순종하심으로 교회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너희는 방향을 돌려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신 1:40) 라고 말씀하신 뒤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스스로의 힘으로 무기를 가지고 올라가서 싸운다. 결과는 참담한 패배고 이것이 보여주는 것은 바로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로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맺어 주신 은혜 언약은 역사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따라 그 내용과 풍성함이 조금씩 계시되었고 신명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관계 속에서 행동하시는 것은 분명히 은혜 언약적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관계를 맺으시는 것은 오직 언약 안에서인데 아담이 행위 언약을 파기한 이후로는 우리와 은혜 언약 안에서 관계를 맺어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관계를 맺으실 때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를 따라서 행동하신다. 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신정 국가를 통해서 장차 오실 예수님 (은헤 언약의 유일한 중보자) 을 더욱 더 선명하게 조금씩 조금씩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그리고 약속하신다.